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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1.12.17][정동칼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작성자
유지원
작성일
2022-01-14
조회
369

원문보기: [정동칼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 경향신문 (khan.co.kr)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1.12.17.


 


1991년에 유학을 간 미국에서 일본이 곧 미국을 추월할 것이고 일본식 경영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이미 시작한 때였는데도 1970~1980년대 일본의 경제적 성공에 매몰되어 곧 드러날 문제를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현재 보이는 것만 보고 미래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거나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가격 경쟁력과 생산공정 혁신 중심의 한국 제조업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은 2011년 이후로 다양한 지수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제조업의 성장률은 경제성장률과 유사해졌고, 제조업 매출 증가율과 수익성도 하락 추세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수출증가율도 2000~2011년 기간에 비해 2011~2017년 기간에 급격히 감소했는데, OECD 평균 수출증가율이 4% 초에서 4% 미만으로 조금 감소한 것에 비해 한국의 증가율은 11% 이상에서 2% 중반으로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촉발된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한국 제조업을 뿌리째 흔드는 위기 요인이다. 정부가 10월에 발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체 탄소 배출량의 38% 정도를 차지하는 산업부문의 배출량을 2030년까지 14.5%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추가로 66%를 더 감축해 산업부문 배출량의 80% 정도를 감축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철강 등은 모두 에너지 소비가 많은 업종으로, 전체 산업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산업부문의 감축 계획은 이런 고탄소배출 중화학공업을 유지한 채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없애는 획기적인 기술혁신이 2030년과 2050년 사이에 일어날 거라는 희망 섞은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 만약에 그런 혁신이 기대하는 수준이나 기간 내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기술혁신이 발생할 때 과연 국내 공장들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철강산업은 2040년경에 탄소계 공정을 수소환원제철로 100% 대체하고, 철스크랩 전기로 조강을 확대하여 배출량의 95%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수소환원제철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국내 철강소가 입지 측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수소를 저렴하게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호주 같은 곳에 철강소가 생기면 국내 철강소들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중화학공업 중심 산업 구조를 그린 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산업전환을 포기한다면, 국내 제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은 산업전환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경제구조로의 개혁과 사회안전망 확충 및 전업에 대한 교육과 지원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고용노동부는 2030년 친환경차가 신차 판매량의 30%인 60만대가 되면, 자동차 엔진과 변속기 등 부품기업 4185개와 관련 종사자 10만8000명에 대한 사업재편이 불가피하고, 정비업소 약 3만6000개와 종사자 9만6000여명의 고용유지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 대책은 탄소중립 기술개발 지원, 스마트 공장 지원, 친환경차 전환 지원 등에만 머물고 있으며,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단계적 실행 계획이나 이에 따른 재정추계와 복지 및 고용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은 추상적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현 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주요 대선 후보들 역시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차기 정부의 대책을 종합적·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선거공학적 계산으로 전시성 청년 영입과 당장에 혜택을 주는 선심성 공약만 난무하고 있다.


30년 후에 지금의 청년들이 맞닥뜨릴 미래는 차기 정부가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차기 정부가 차일피일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진정으로 청년과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어렵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이 문제에 응답해야 한다. 또 그것이 진정으로 청년의 마음을 잡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