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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03.21] 알박고, 까내고, 낙하산…‘고연봉 꽃보직 보은’에 행정 부실 악순환

작성자
유지원
작성일
2022-04-12
조회
510

알박고, 까내고, 낙하산…‘고연봉 꽃보직 보은’에 행정 부실 악순환


기사원문보기: 알박고, 까내고, 낙하산…‘고연봉 꽃보직 보은’에 행정 부실 악순환 - 경향신문 (khan.co.kr)


안광호 기자 | 입력: 2022.03.21 20:58 | 수정: 2022.03.22 17:33


 


그들은 왜 ‘공공기관 인사’에 집착하나


“파벌싸움 때문에 직원들이 윗선 눈치보면서 사내 정치만 한다.”


한국마사회 6개 노조 중 한 노조의 관계자 말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마사회에서는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달 정기환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전 마사회 상임감사)이 제38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마사회는 2019년 마사회 비리를 고발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 사망사건, 코로나19 확산 이후 악화된 경영, 노·노 갈등으로 최근 몇 년간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특히 전임 김우남 회장의 직원 폭언 등까지 겹치면서 대외적인 위상도 추락했다.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회장 자리에 내려앉으면서 경영 정상화는커녕 전 정권에서 벌인 사업과 사람들이 적폐로 내몰리고, 표적감사와 보복인사가 난무하면서 내내 파벌싸움만 벌어졌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가톨릭농민회 출신의 정 회장 취임 이후에도 내부 동요와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사실상 문재인 사람이 정권 말 ‘알박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3년간 마사회를 이끌 회장으로 임명됐다”며 “내홍이 꺼지지도 않은 상황인 데다 향후 마사회 운영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을 것으로 보여 직원들의 걱정과 동요가 크다”고 말했다.


정권교체기 공공기관 임원 인사를 놓고 신구 권력 간 벌어지던 줄다리기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임기 말이면 어김없이 보은성 인사를 고집하며 ‘알박기’ 논란을 키웠다. 문제는 전문성과 공정, 능률과는 무관한 정실인사로 인해 조직 내부 와해, 공공기관 부실화, 행정력 낭비 등 부작용이 크다는 점이다.


 


기관장 평균 연봉 1억8000만원


공공기관장, 이사, 감사 등 공공기관 임원의 연봉과 처우는 대체로 고위직 관료보다 좋다. 21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보면, 올해 공기업(36개)·준정부기관(94개)·기타공공기관(220개) 등 공공기관은 총 350개다. 이 중 공기업·준정부기관 등 130개 기관은 기관장, 이사, 감사 등 3명의 상임 임원이 있다.


기관장 평균 연봉(2020년 기준)은 1억7997만5000원이다. 구체적으로 공기업 기관장은 2억1512만원, 준정부기관 기관장은 1억8485만2000원, 기타공공기관 기관장은 1억7196만5000원의 평균 연봉을 각각 받았다. 이는 올해 장관 및 장관급에 준하는 공무원 연봉(1억3718만9000원)뿐 아니라 부총리와 감사원장(1억4114만5000원) 연봉보다 높은 수준이다. 기관장 연봉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투자공사(KIC)로 4억6531만6000원이다. 이어 한국예탁결제원(4억1591만1000원), 중소기업은행(4억1372만4000원),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각 3억8879만5000원) 등 대체로 금융권 공공기관장 연봉이 높다. 급여와 처우가 좋다보니 유독 금융공기업 기관장 인사 때 낙하산 논란이 잦았다. 한 금융공기업 노조 관계자는 “금융공기업은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거나 출연금을 마련하기 때문에 정부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며 “전문성과 무관한 전직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와도 잠깐 논란이 될 뿐 낙하산 관행이 바뀌는 구조가 아니어서 요즘은 ‘처우나 위상이라도 좋아지려면 차라리 힘 있는 인사가 최고경영자(CEO)로 오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은 기재부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4·6조에 따라 적용 및 관리 대상이 되는 기관을 매년 신규 지정하거나 해제하고 있다. 기관장들은 최소 3년의 임기를 보장받고 1년 단위의 연임이 가능하다. 정부 경영평가에 따라 성과급을 추가로 받으면서 별도의 업무추진비와 집무실, 차량, 비서, 운전기사 등을 지원받는다.


기관장을 견제하고 임직원의 부정부패와 회계 업무를 감시·감독하는 상임감사도 혜택이 좋다. 기관장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과 차량, 비서 등을 지원받는다. 기관장과 달리 외부의 감시와 노출도 적어 낙하산 보직 중에서도 ‘꽃보직’으로 통한다. 이렇다보니 역대 정부마다 정권에 충성한 여권 정치인, 고위 관료 등이 자리를 꿰차는 일이 많고 임기 말 알박기 논란이 반복된다.


 


‘알아서 사퇴’ 강요 불가능해져


과거에는 공공기관 임원들이 관행적으로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알아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이젠 양상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공공기관장들에게 사직을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 측이 최근 공공기관 인사를 두고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다. 대통령과 국정철학이 맞는 인사를 실행조직에 앉혀야 정책 추진에 동력이 생기게 마련인데, ‘알박기’ 인사로 공약 추진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기를 보장한 것은 공공기관이 특정 정권의 산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는 측면에서 취임도 하지 않은 차기 정권이 인사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박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5월9일까지로 3월과 4월의 공공기관 인사권은 여전히 현 정부에 있다.


신구 정권 간 공공기관장 임명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 정부가 국정 방향에 적합한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되 퇴진할 때는 함께 물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연방정부의 약 9000개 주요 직위의 명칭, 현직자 이름, 임명 형태를 수록한 미국의 ‘플럼북(Plum Book)’ 사례를 참고해 공기업 인사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책연구원의 경우 같은 국책사업을 놓고도 정권 입맛에 따라 결론이 바뀌는 일이 많다”며 “정치적 독립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국은행 총재 등 일부 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공공기관들은 기관장 임기를 대통령과 같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역대 정부마다 공공기관의 투명성을 강조할 뿐 실행하진 않은 만큼 반복되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런 내용을 입법화하는 작업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