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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9.10.06] “文정부 재벌개혁은 F, 재벌 빠진 검찰개혁은 반쪽짜리”
“文정부 재벌개혁은 F, 재벌 빠진 검찰개혁은 반쪽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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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교수. 이준헌 기자
문재인 정부는 전방위적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탄생했다. 개혁 대상은 정치권력·재벌·노동·교육·환경·인권 전 분야를 아우른다. 이 가운데 정부가 택한 개혁의 양축은 정치·권력기관과 재벌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서도 개혁 대상 1·2순위에 나란히 올라 있다.
집권 3년차 문재인 정부의 개혁작업은 어디까지 왔을까. 2019년 10월, 돌아가는 개혁 시계의 바늘은 ‘검찰’을 향하고 있다. 조국 사태가 모든 개혁 의제를 집어삼키면서다. 2순위로 꼽았던 재벌개혁도 멈춰섰다. 가뜩이나 ‘재벌의 자발적 개혁’ 방침을 택했다가 미진한 성과를 내는 데 그쳤던 재벌개혁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재벌개혁에 대한 동력은 완전히 상실된 걸까. 정부의 미온적인 개혁 행보를 두고 쓴소리를 해온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지난 9월 30일 만났다.
-경제개혁 이슈가 보이지 않는다. 재벌개혁, 경제민주화가 이제는 낯선 구호처럼 느껴진다.
“조국 이슈가 모든 개혁의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조국 사태로 경제개혁 이슈가 사라졌다. 검찰개혁, 중요하다. 적폐청산을 완수하려면 검찰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검찰개혁이 적폐청산의 전부가 아니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적폐의 한 축에는 재벌이 있다. 적폐 안에는 정치권력과 검찰·사법권력, 경제권력이 얽혀 있다. 어느 하나를 해소한다고 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분야에 대한 개혁작업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정부는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조국 장관의 개혁안은 어떻게 봤나.
“개혁을 원하는 조국 장관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런데 조국 장관의 개혁은 검찰분야에 집중돼 있다. 조국 장관은 법무부 수장이고 법무부는 상법개정과 같은 경제분야도 관할하는 부처다. 그간 법무부 정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상법문제를 두고 논의를 많이 했다. 헌데 이번에 조국 장관이 발표한 개혁안에는 상법과 같은 경제분야 안건이 빠졌다. 정책위원회에서 논의했던 경제개혁 안건들도 장관 개혁안에 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책위원회 안건 대신 조국 장관 본인의 아이디어를 넣은 것도 아니다. 조국 장관의 개혁안에는 경제개혁,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림이 빠져 있다.”
-검찰개혁만 해도 큰 성과 아닌가.
“검찰개혁은 크게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검찰권력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 이제까지는 이 세 가지 모두가 확보되지 않았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 구상에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통제받지 않는 경제권력이 된 재벌의 개혁 없이는 검찰의 독립이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
-경제가 어렵다. 디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혁 운운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잘못된 학습의 결과다. 보통 재벌개혁은 경제가 좋을 때 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경기가 좋을 때는 개혁을 할 수 없다. 위기의식 없이 어떻게 개혁을 하나. 경제가 어려울 때 개혁 모멘텀이 생긴다. 지금 정면돌파해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개혁의 과실은 다음 정권이 얻어가더라도 지금 단행해야 한다. 재벌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면 정권 지지율도 반등한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으로 경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겠나. 남북경협? 남북경협으로는 패러다임 전환이 안 된다. 재정을 풀어 단기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정부에서 추경을 통해 현상유지를 하려는 모양인데 그건 현실을 외면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모래사장에 얼굴을 파묻고 노래하는 것과 같다.”
-재벌개혁에 대한 반감도 크다. 보수뿐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재벌개혁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재벌개혁을 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경제가 다 좋아지느냐’…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현재 재벌에 집중돼 있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벌 중심 체제가 유지될수록 경제는 더 활력을 잃고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재벌 중심 구조를 끌고 왔다가 어떻게 됐나.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그간 한국 제조업은 하청업체를 통한 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했다. 그러다 중국 특수를 맞아 10년 정도 이전 경제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특수 덕에 혁신을 멀리하고 현실에 안주했다. 결과적으로 그 10년이 독이 됐다. 중국이 로엔드 제품군들을 잠식하면서 한국은 로엔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렇다고 하이엔드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하이엔드 부품·소재에서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퀄리티 있는 부품·소재를 못 만든다. 대기업 하청구조로 가다보니 기술 좋은 전장기업 육성을 못했다. 부품·소재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과 전속계약으로 묶여 있다. 중소기업에서 좋은 기술을 애써 개발해봐야 대기업이 탈취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가 만연하게 된 배경에는 총수 일가의 세습과 사익 편취가 있다. 이런 구조를 탈피해야 생존할 수 있다. 지금 안 하면 너무 늦는다. 상황이 심각한데 경제개혁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세력 간 다툼만 반복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정부·여당이 친재벌 노선으로 돌아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벌개혁 운동을 오래 하다보니 민주당 의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느낀 바가 있다. 재벌개혁을 입에 달고 사는 민주당 내 주류 의원들보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더 개혁에 적극적이고 고민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재벌개혁을 말하고 실천하지 않는 의원들은 재벌개혁을 선거에 이용하는 도구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재벌개혁은 많은 분들이 원하는 의제니까 선거 때만 이용하고 그냥 두는 거다. 제 발언을 듣고 기분 나쁜 의원이 있다면 행동해서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으면 한다.”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어떻게 평가하나.
“F를 줄 수밖에 없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를 도입한 박근혜 정부보다 개혁 성과가 부족하다고 본다. 대부분 개혁 핵심 안건은 법안에 밀어넣었는데 법 통과가 안 된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시행령·상장 규칙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합병, 총수 일가 보수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 일감 몰아주기가 줄었다고 많이 홍보하는데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들은 오히려 더 늘었지 않나. 재벌 지배구조 개선도 세습을 위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은 것뿐이다. 그나마 지배구조 개선 실적 수치 대부분이 롯데그룹 한 곳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정부가 생각하는 개혁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밝혔으면 한다. 경제구조 개혁을 위험해서 못하겠으면 사실대로 공개하는 게 맞다. 재벌개혁으로 표를 얻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다. 정체성을 밝힐 때가 됐다.”